2022. 2. 22. 11:49ㆍ카테고리 없음
2021년 2학기에 전누리 교수님의 '마이크로기전시스템의 기계공학응용'이라는 강의를 들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이전에는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반도체에 대해서, 그리고 이를 만들기 위해 거쳐야 하는 미세공정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교수님께서는 강의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원하는 연구실이 있으면 인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말을 자주하셨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학원의 악명에 대해 자주 들어왔기 때문에 대학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대학원 실습을 해보면서 인턴은 꼭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선뜻 인턴 활동을 하겠다는 용기가 나지는 않았고,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종강을 한 이후 연락을 드려 인턴에 참여하였다.
인턴은 12월의 마지막 주, 27일 부터 시작하였다. 주 3회 10-18시 근무였는데, 출근 해보기 전에는 근무 시간이 적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은 금새 바뀌었는데, 출근을 해서 하는 일이 많고 어려워서가 아니라 하는 일과 해야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고역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인턴을 하는 동안에 같이 인턴을 하는 학부생들이 많았다. 인턴들은 각자 사수들에게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 배우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사실 대학원생분들이 모두 바쁘셔서 가만히 있으면서 사수가 가르쳐주기만을 바라면 많은 것을 배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처음 1-2주 동안에는 각종 자료와 이 분야의 대표 논문들을 읽으면서 내가 속해있는 연구실이 어떠한 연구를 진행하는지에 대해 어렴풋이 알아갔다.
MBEL은 Multiscale Biomedical Engineering Lab.의 약자로 멀티스케일 의기계공학 연구실이다. 내가 인턴 활동을 하면서 알아본 바, 이 연구실에서는 3차원의 organ-on-a-chip 기술을 소수의 연구실에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제약 회사 혹은 병원에서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과 기반 이론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짧은 식견으로, 짧은 문장으로 줄이다 보니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략적인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k-sR82KX1eI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MBEL에서는 '의'기계공학을 연구한다. 그런데 나는 고등학생일 때에도 생물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어서 굉장히 힘들었다. 특히 처음에 논문을 볼 때 한국말로 해도 어려운 의학, 생물학 용어들이 난무해서 한시간에 한 장도 읽기 힘들었다. 그렇게 머리를 싸매가면서 힘들게 논문을 읽고 있을 때 포닥 과정의 한 대학원생 형이 한가지 충고를 해주었다. 바로 논문을 읽지 말고 나무위키나 유튜브로 어느 정도 감을 익히고 논문을 읽으라는 조언이었다. 그 때 찾아본 링크가 바로 위 링크인데, 생체 칩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주고 있어 인턴 활동 초기에 장기칩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후에는 MBEL에서 진행하고 있는 실험을 뒤에서 보고, 많은 논문을 읽으며 MBEL이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지 배워나갔다. 이를 써보면서 내가 제대로 인턴생활을 했는지 돌아보고 싶기도 해서 주욱 나열하면서 써보려 한다.
제약, 임상 등에서 인간에게 적합한 약물을 골라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 수없이 많은 동물 실험과 임상 실험까지 거쳐야 하며, 그럼에도 모든 사람에게 그 약이 적합한 약물이 아닐 수도 있다. 또한 동물 실험에는 윤리적인 문제가 존재하며 임상 실험에도 분명한 제약이 존재한다.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떠오른 것이 'organ-on-a-chip'이라는 기술이다. in vivo 모델이 아닌 in vitro 모델이지만 사람의 생리 시스템을 모사하였기 때문에 약물이나 질병이 생체 내에서 작용하는 방식 또한 비슷하게 모사하여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다. 또한 임상에서는 환자 개개인의 생리 시스템을 미세생리시스템(MPS)으로 모사하여 특정 환자에게 적합한 약물 또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현재는 이런 'organ-on-a-chip'을 소수의 연구실에서 연구 목적으로만 사용하고 있고, 다양한 분야의 실제 업무에서는 활용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사용할 때의 난이도가 높아 칩을 개발한 연구원들의 지도를 받아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기도 한다. 또한 칩과 관련 장비를 연구실에서 제작하여 판매하는 경우 가격이 너무 비싸서 사용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관련 분야에서 종사하시는 분들이 사용하기 편하고, 가격이 합리적인 organ-on-a-chip을 개발 중인 곳이 MBEL이라고 느꼈다. MBEL에서는 세포를 칩에 집어 넣는 것, 세포를 키우는 것, 결과를 관찰하는 것 모두 쉽고 간편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사람 몸안의 생리 시스템을 칩 위에서 최대한 유사하게 구현하기 위해서 특정 장기의 특성을 모사하기 위해 필요한 기능을 칩에 포함시키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lung-on-a-chip 같은 경우에는 숨을 쉴 때 폐포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특성을 모사하기 위하여 세포가 자란 well 근처에 주기적으로 진공을 가해주었다. 그러면 PDMS로 만들어진 칩은 탄성적인 변형을 반복하면서 실제 사람의 폐에서 나타나는 폐포의 팽창과 수축을 모사하게 된다. 관련 논문에서는 팽창과 수축이 있었을 때와 없었을 때의 실험 결과가 달랐으며, 팽창과 수축이 있었을 때 실제 사람의 몸에서 나타나는 반응과 유사하다고 한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작은 구멍들이 폐포가 팽창하면서 커졌을 때, 미세한 입자들이 통과하는 정도에 대한 실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존에도 인간의 장기, 조직을 인간의 몸 바깥에서 구현하여 실험에 이용하려는 움직임은 있었다. 그렇지만 2차원적인 모형에 그쳤기 때문에 제대로 된 생리시스템을 모사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간과 콩팥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지에 대한 모형을 만든다고 했을 때, 이전에는 혈액과 같은 유체의 흐름이 실험 접시 바닥에 깔린 간과 콩팥의 세포 위를 지나가기만 하는 정도였다. 이는 당연하게 실제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과 같은 반응을 모사할 수 없다. 현재는 이들 사이의 상호 작용이 주로 혈관과 림프를 통해 일어난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것 또한 모사한다. 그저 특정 장기의 세포 주위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장기들 사이에 형성된 혈관과 림프를 통해 흐르며 실질적인 장기간의 상호작용을 모사한다. 이것마저도 실제 인간의 몸과 정확하게 같지는 않겠지만, 기존의 2D 장기칩에 비하면 큰 발전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한 마디로 줄이자면, MBEL은 organ-on-a-chip을 3D로, 목적에 맞는 형태로, 사용하기 편하고, 저렴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연구를 진행중인 것 같다.
사실 실제로는 칩을 개발하는 것 뿐만 아니라, 기존에 있는 칩을 이용하여 in vitro 실험을 하는 부분도 있다. 사실 내가 참여한 실험은 이쪽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피펫을 만지면서 실험을 했던 것은 HCT116(대장암세포)을 키우는 실험, fibroblast와 endothelial cell을 칩에 패터닝 해서 angiogenesis를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이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칩을 이용하여 진행하였다. 이런 실험을 진행하면서 대학원에서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실험을 진행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기계공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칩을 개발하는 과정에 대해서 배우고 싶은 마음이 더 컸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해 아쉽다.
사실 칩을 새로 개발하는 것은 병원이나 회사와 같이 논의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서 2달 남짓한 인턴 기간 동안 이 부분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칩을 디자인 해 본 일이 있는데, 중간에 외국인 대학원생인 슈리디가 본인 연구의 기획서를 작성할 때 필요한 칩 이미지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했을 때이다. 이 때 솔리드웍스로 비슷한 모양의 well을 만들어 주었는데, 뼈의 구조를 모사하는 칩에 포함되는 구조였다. 뼈 주변에도 체액이 있고, 이 체액이 뼈 세포와 상호작용을 하게 되는데 이를 칩 위에 구현하는 과제였다. 학부생 수준이어서 칩에 적용되는 microphysics를 엄밀하게 따져가면서 디자인 한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 인간의 몸에 존재하는 구조를 참고하여 새로운 구조물을 만들어 낸다는 일은 아주 흥미로웠다.
위의 사진을 참고하여 칩을 구성하였는데, 생각보다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았으며 상상한 대로 솔리드웍스를 다루는 것 또한 어렵다는 것을 배운 경험이었다.
인턴 활동이 거의 끝나가는 기간, 지금 글을 적고 있는 인턴 마지막 주에 교수님이 우리에게 방치된 레이저 커터를 이용하여 실험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간단한 장치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하셨다. 실험에 사용하는 디쉬에 칩을 고정하여 보관,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인데 구조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대략 이런 모양의, 2mm 정도 두께의 아크릴 판이다. 그래서 간단해 보였지만, 생각보다 문제가 많았다. 첫번째로는 냄새 문제가 있었다. 아크릴을 레이저로 절단하다보니 유독가스 같은 냄새가 났다. 그래서 이 장치를 15명 가량이 생활하는 연구실에 두고 가동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가스를 빼는 후드를 기존에 연결된 후드에 직접 연결하는 등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두번째 문제는 레이저 커터를 다루는 tool 프로그램이다. 제품이 외국의 제품이고, 널리 알려진 제품이 아니다보니 사용법을 알아가는데 시간이 오래걸렸다. 이에 더해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서 이미지를 편집해야 했는데 벡터 이미지를 다룰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하기 쉽지 않아서 꽤 고생했다. 어찌저찌 문제 해결 방안을 떠올려서 말씀을 드렸는데, 아마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인턴 활동이 끝나서 결과물은 보지 못할 것 같다. 아쉬운 일이다.
사실 MBEL 인턴이 들어오기 전에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라서 걱정이 많았다. 내가 이 분야를 배워서 나중에 도움이 될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매일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제 인턴 활동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돌아보니 쓸데없는 걱정이었던 것 같다. 내가 원했던 분야와 정확하게 겹쳤던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공부하는 기계공학이라는 지식들이 다른 분야와 결합되어서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생각의 틀이 넓어진 느낌? 표현하기 애매한데 이런 느낌이 드는 것 같다. 그리고 대학원과 대학원생들의 생활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서 향후 진로를 설정할 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대학원은 최후의 보루...)
모두들 바쁜 와중에도 병아리같은 인턴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시간을 빼 주셨던 형, 누나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이번에 배운 것들, 기억들을 소중히 간직해야겠다.